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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L/Opinion

유리 지르코프에 대해서 말하다 [2008.11] 유리 지르코프 1983년 8월 20일 탐보프 출생 180 CM 75 KG 미드필더.2001년부터 스파르탁 탐보프에서 뛰기 시작하였으며 2004년 3월 12일 토르페도-메탈루르그 전을 통해 1부리그 데뷔를 하였다. 리그에서 총 129경기 출전하여 14골 32어시스트를 기록중이며 컵대회에 21경기 3골과 슈퍼컵 3경기 1골,유럽대항전 43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CSKA에서 총 196경기 20골. 2005.2006시즌 리그 우승. 2004,2008시즌 리그 준우승 2007년 리그 3위 04/05,05/06,07/08 컵대회우승 2004.2006.2007 슈퍼컵우승 2004/5 우에파컵 우승 2005년 우에파 슈퍼컵 출전 2008시즌 스포르트-익스프레스 선정 올해의 선수 (평점 6.38) 2008년 1월 CS.. 더보기
제니트에 누가 남을것인가 ? [2008.11] 어제 제니트 알렉산드르 쥬코프 회장과 딕 아드보카트 그리고 선수영입을 담당하는 콘스탄틴 사란사니아가 만났습니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요. 얼만큼의 지출을 하여 새로운 선수를 영입할것인가? 또 아드보카트는 누구를 데려오고 싶어하는가? 대체적으로 구단과 아드보카트는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앞으로의 선수영입방침이 어떤 선수들이(주전중에서) 이적시장동안 팀을 나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조만간 제니트는 아나톨리 티모슉과 파벨 포그레브냑에게 좋은 조건의 재계약을 제시할것입니다. 그리고서는 그들이 뻬쪠르부르크에 남을지 떠날지 알게되겠죠. 인생에서 모든것에 대해 지불하게 되어있다.(공짜란 없다) 절대 승리의 5월에 제니트는 가을에 계속되는 경기들속에서 체력이 바닥나면 그것은 곧 돌아.. 더보기
CSKA에 카르발류가 필요한가 ? [2008.11.18]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늘 새벽 3시 과달라하르에서 인테르나시오날은 멕시코의 치바스를 상대로 남미컵 경기에 나섰다.CSKA에서 임대된 미드필더 다니엘 카르발류는 오늘도 벤치에 남았다. 이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CSKA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준 카르발류를 인테르나시오날에 임대를 보낼때 CSKA는 리그 8위였다. 그러더니 점차 리그 테이블을 치고 올라가더니 11월중순에는 이미 리그 2위와 챔피언스리그 본선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모든게 법대로 였다. 가자예프의 팀은 제설기계처럼 길가에 쌓인 눈을 치우듯 승점을 먹어 치운게 아니라 환상적인 경기들을 보여줬다.리그네에서 가장 올바를 경기 랄까?? 이런 리그에서의 성과와 우에파컵에서의 멋진 출발은 CSKA 팬들로 하여금 저 멀리 임대가있는 카르발류를 그리워하고.. 더보기
두번 배신한 남자 빠른 이해를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레알 - 바르샤 - 레알 행과 같은 길을 걸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비스트로프. 비스트로프 러시아어로 이름부터 "빠르다" 1984년생으로 뻬쩨르부르크 지역 토박이다. 케르자코프.아르샤빈,데니소프,블라소프와 함께 제니트 유치원 5인방이라 불렸다. 2002 시즌 데뷔했으며 체코 출신 감독 "페트르젤라"의 공격적인 전술에 적합하는 윙어로 불리며 주전으로서 활약했다. 제니트 2002-2005 2002 12경기 0골 2003 24경기 6골 2004 28경기 1골 2005 18경기 1골  2005시즌 중반 여름 "스포르트 익스프레스"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다. 1면을 장식한 소식은 비스트로프의 스파르탁 모스크바 행이 확정되었다는 .. 더보기
CSKA 모스크바 구단주 예브게니 기너의 주요 쇼핑목록 그가 영입한 선수들 이르쥐 야로식 2003시즌 당시 리그 최고액인 300만 유로에 스파르타 프라하로 부터 영입 이비짜 올리치 2003시즌 여름 디나모 자그레브로 부터 500만 유로에 영입 CSKA 모스크바 팬들의 아이콘으로 칭송받았으며 이에 바그너 러브는 팬들이 너무 올리치만 편애한다며 불평을 했을 정도. 다니엘 카르발류 영입초반에 활약이 미비했으나 2005년 살아나기 시작하며 팀의 첫 우에파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영입당시 이적료 1000만 달러 (추정) 연봉 120만 달러로 최고 대우를 받았다. 오스마르 페레이라 2004 시즌을 앞두고 리베르 플라테로 부터 450만 유로를 주고 영입했던 실패작 등번호 10번을 받았을정도로 기대치가 높았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지르코프"가 흥했다. 이번차례에 .. 더보기
스파르탁 모스크바 팬들의 아이콘 스파르탁 모스크바하면 국내 축구팬들은 대게 이고르 티토프를 떠올릴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아이콘은 따로있다. 안드레이 티흐노프 스파르탁 모스크바 팬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로써 아직도 그들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1992년부터 2000년 로만체프와의 불화로 "숙청"당할때까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리그 독주와 유럽무대에서의 성공을 이끈 핵심선수이다. 원래 포지션은 측면 미드필더지만 공격 전 포지션을 소화할수있는 만능선수이다. 1970년생으로 만 40세 이지만 아직까지도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관리의 대명사이다. 이고르 티토프와는 절친으로 2009시즌 카자흐스탄리그 아스타나에서 친구와 1시즌동안 뛰었다. 그저 이제는 축구의 즐거움을 느낄 나이라고 말하지만 뼈.. 더보기
"아기피부" 아킨페예프 이야기 기본적인 신상명세는 검색신공으로 충분히 알수 있기때문에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내가 아킨페예프를 처음 보게된건 그의 데뷔시즌인 2003 시즌이다. 2003시즌 CSKA는 베냐민 만드리킨이라는 당시 러시아 청소년대표팀 주전 골리와 시작했다.다. 만드리킨은 가자예프 감독이 발굴한 선수로서 CSKA 모스크바의 10년 미래로 불리었다. 사건의 발단은 제니트 주장인 블라드 라디모프와의 언쟁때문에 만드리킨이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으면서다. 누가 봐도 후보 골리인 등번호 35번의 만 17세 소년은 다시 벤치로 돌아갈것이라는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드리킨이 돌아온 이후로도 아킨페예프는 골문을 지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부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골문을 비운적이 없다. 2003 시.. 더보기
2004년 여름의 추억 2004년 여름 모스크바는 무지 더웠다. 2002.2003 시즌 로코모티브와 CSKA 모스크바에 밀려 강건너 불구경 하던 스파르탁 모스크바는 2004 시즌을 앞두고 파르마에서 우에파컵을 들어올렸고 이웃나라 우크라이나 명문 도네츠크에서 감독경험이 있는 "네비오 스칼라"를 영입한다. (동유럽 리그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중 정기구독을 하던 스포르트 익스프레스를 통해 카베나기를 영입할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러시아리그는 그나마도 괜찮은 용병들이 오지 않았다. 돈이 있어서 좋은 선수를 사기는 힘들었던 시절이다. 물론 체코출신의 야로식같은 경우엔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CSKA 모스크바로의 이적은 업그레이드를 의미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카베나기는 당시 수많은 유럽.. 더보기
RPL 우승팀 이야기 part.1 (1992-2000) "우승도 해본놈이 한다고" 지난 20여년간 오직 다섯 감독들 만이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90년대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독주는 소위 말하는 골든제네레이션들의 총집합과 로만체프의 카리스마있는 리더쉽 러시아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잘 융화시켜서 "Spartakovsky Football"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Spartakovsky Football" 이란 잦은 2대1 패스와 동료를 이용하는 아기자기한 축구로 지금의 바르셀로나 혹은 아스날의 그것과 조금 비슷하다. 이고르 티토프.안드레이 티흐노프.일리야 침발라리.블라디미르 베스샤스니흐 세르게이 유란.빅토르 오노프코.발레리 카르핀.드미트리 알레니체프 등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활약했다. 리그에서의 독주뿐만 아니라 유럽무대에서도 선전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조별경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