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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최 희망 도시 볼가그라드 45015명 수용  모스크바 "디나모 경기장" 44920명 수용 에카테린부르크 44130명 수용 카잔 45105명 수용 칼리닌그라드 45015명 수용 모스크바 "루쥐니끼 경기장" 89318명 수용 모스크바 레기온 (비밀경기장) 44257명 수용 니즈늬 노보그라드 44899명 수용 쌍트 뻬쩨르부르크 69501명 수용 로스토프 나 다누 43703명 수용 사마라 44918명 수용 사란스크 45015명 수용 소치 47659명 수용 모스크바 "스파르탁 경기장" 46990명 수용 야로슬라블 44042명 수용 더보기
해외파 득점 TOP 10 10.알렉산드르 모스토보이 (셀타 비고) 12골 2000/01,2001/02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셀타 그 자체. 9.알렉산드로 콜로틸코 (몰렌벡) 13골. 2001/02 벨기에리그에서 13골이면 그닥 많은 골은 아님. 웨슬리송크가 이번시즌 30골 넣는거 보듯이... 8.발레리 카르핀 (레알 소시에다드) 13골 1995/96 13골로 팀의 리그 7의에 공헌했다. 7.세르게이 키랴코프 (칼스루헤) 13골 1993/1994 93/94 시즌의 칼스루헤는 지금과는 비교하지 말자. 올리버 칸이 지키는 골문과 공격 선봉 키랴코프가 있던 시절엔 우에파컵 4강까지 갔었다. 6.블라디미르 베스샤스니흐 (베르더 브레멘) 14골 1994/95 해외로 나가자마자 오토레하겔과 마리오 바슬러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 이후.. 더보기
스포르트 익스프레스 선정 러시아리그 올해의 선수들 1991년 이고르 코르네예프 CSKA 모스크바 CSKA 모스크바,에스파뇰,바르셀로나,헤렌벤,페에노르트,NAC 브레다 1992년 이고르 레댜호프 스파르탁 모스크바 스파르탁 모스크바,스포르팅 히혼,요코하마 마리노스 1993년 빅토르 오노프코 스파르탁 모스크바 샤흐타르 도네츠크,스파르탁 모스크바,레알 오비에도,라요 바에카노 CSKA 엠블럼에 키스하는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위대했던 주장 1994년 이고르 시무텐코프 디나모 모스크바 디나모 모스크바,레지나,볼로냐,테네리페,루빈 카잔 1994년 디나모 모스크바 VS 카마즈 1995년 일리야 침발라리 스파르탁 모스크바 체르노모레츠 오데사,스파르탁 모스크바 1996 시즌 VS 알라니야 1996년 안드레이 티흐노프 스파르탁 모스크바 스파르탁 모스크바,사마라,힘키 1997년.. 더보기
[Most Wanted] 밀로스 크라시치 밀로스 크라시치 1984년 11월 1일 코소프스카-미트로비짜 출생 (유고슬라비아) 185 / 75 1999 - 2004 보에보디나 76경기 7골 2004시즌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CSKA 모스크바로 이적 2005.2006 시즌 러시아리그 우승 2004/5 2005/6 2007/8 2008/9 러시아컵 우승 2004.2006.2007.2009 러시아 슈퍼컵 우승 2004/5 우에파컵 우승 2009/2010 챔피언스리그 8강 2007.2008 최고의 33인 1위 2009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 p.s 솔직히 크라시치가 처음 CSKA에 왔을때 이정도로 성장할줄 몰랐다. 당시 CSKA의 오른쪽 측면은 구세프와 오디아가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시치는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당시 팀의 판타지스타였던 카르발류의 여.. 더보기
괴짜 밴드 리더와 제니트 러시아의 성공한 펑크/스카 밴드 "레닌그라드"의 리더 세르게이 슈누로프 레닌그라드 (뻬쩨르부르크) 토박이며 제니트의 광팬으로 유명하다. 상당히 직설적인 성격으로 몇년전 러시아 음악채널 MUZ-TV의 시상식 무대에서 수많은 립싱크 가수들을 디스하는 무대를 연출했고 인터뷰에서 "X"이라고 카메라에 대고 욕설을 하는둥 돌출행동에 능하다. 레닌그라드 최고의 히트곡 "WWW" 케르자코프와 제니트에 관해... 보너스 트랙 Anna Nova and Shnurov - "GO ! Zenit !!!" 더보기
뻬쩨르부르크를 사랑한 남자 165센티의 단신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알렉산드르 파노프 이야기다. 1975년 레닌그라드 레기온 콜피노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1993시즌 제니트 2군을 시작으로 2000시즌까지 제니트에서 뛰었다. 1996시즌에는 중국리그에서 1시즌 임대되어 뛰었고 12경기 19골의 활약으로 다시금 제니트 퍼스트 스쿼드에 합류할수 있었다. 파노프를 애기하는데 있어서 빼놓을수 없는 유로 2000 예선 프랑스와의 파리 원정경기이다. 당시 오직 승리만이 필요했던 러시아는 한수위의 프랑스를 상대로 3대2 역전승을 거두었고 2골을 넣은 파노프는 팀 승리의 선봉이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0/2001 시즌 셍-에티엔으로 이적하지만 아무 활약이 없었고 2001시즌 스위스 로자나로 임대되었다. 전설의 유로 2000 예선 .. 더보기
무능한 구단주 그 자체 "안드레이 체르비첸코" 안드레이 체르비첸코 1966년 로스토프 나 다누 출생 ex-스파르탁 모스크바 구단주,ex-FK 힘키 구단주 대학 졸업후 "루코일"에서 일했고 그 후엔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계좌가 있던 "Kras Bank"에서 일했다. 후에 루코일의 스포츠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제네럴 디렉터 유리 자바라진과는 여름 다차가 이웃이었던 관계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사이었다. 자바라진은 체르비첸코로 부터 "루코일"이 CSKA 모스크바와 스폰서쉽 계약을 체결할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자바라진은 스파르탁 모스크바와 스폰서쉽 계약을 체결하도록 그를 설득했다. 또한 루코일 회장 바깃 알렉페로프 또한 "체첸"출신의 CSKA 구단 수뇌진과의 계약을 거절한다. 2000년 여름 체르비첸코는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부.. 더보기
2002년 여름 시체프에게 무슨일이 ? 2002 월드컵 러시아 대표팀의 유일한 수확은 드미트리 시체프이다. 2002 시즌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화려한 전반기를 보내고 엔트리에 탑승해서 누구보다 값진 활약을 했다. 벨기에전 종료후 눈물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눈물 흘릴일들이 ... 무능한 구단주 그 자체 체르비첸코 그의 재임당시 유일하게 칭찬받을 일이 이고르 티토프와의 좋은조건의 계약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생략하고 본론만 애기하겠다. 사건의 발단은 2002 년 월드컵 종료후 시체프는 새로운 계약을 요구했다. 1000불이 조금 넘는 주급은 시체프의 활약도에 비해 노예계약이었다. 구단주 체르비첸코가 "그 나이 선수에게 그정도 주급이면 충분하다"라며 재계약을 거부하자 이적을 요구한다.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유벤투스.파르마.밀란.바이에른.. 더보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위의 사진을 보면서 무슨생각이 드는가 ?? 그냥 벤치의 모습인가 ??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위대한 주장 빅토르 오노프코가 숙적 CSKA 모스크바 벤치에 있는 모습이란 말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설명하자면 바르셀로나의 감독인 "펩"이 레알 마드리드 벤치에 앉아있는것을 생각하면 될것이다. 라모스 감독의 CSKA 행과 함께 영입되었다. 오노프코는 오랜 라리가 생활로 인해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라모스 경질과 동시에 팀을 떠날줄 알았지만 술츠키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경기 6전 전승을 이끌던 위대한 주장 빅토르 오노프코의 자리가 스파르탁 모스크바엔 없다는 말인가 ?? 자신과 동갑내기 친구인 발레리 카르핀이 감독이라서 그런걸까 ?? 더보기
러시아 축구사상 최고의 재능으로 불리었던 사나이 모스토보이도 아니고 카르핀도 아니고 아르샤빈도 아닌 이고르 샬리모프 되시겠다. !!! 1969년생으로 흔히 "골든제네레이션"이라 일컫는 1990년 유럽청소년대회 우승팀 멤버중의 핵심이다. 플레이메이커로서 득점력 또한 뛰어났다. 만 21살의 나이로 소련의 전설 로바노프시키 감독사단의 1990년 월드컵 대표로도 출장했다. 2008년 부터 러시아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있다. 클럽 커리어 1986-1991 스파르탁 모스크바 95경기 20골 1991-1992 포르자 33경기 9골 1992-1994 인테르 50경기 11골 1994-1995 두이스부르크 임대 21경기 0골 1995 루카노 12경기 4골 1995-1996 우디네제 20경기 0골 1996-1998 볼로냐 34경기 5골 1998-1999 나폴리 19경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