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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L/Opinion

RPL에서 활약한 우크라이나 국대선수 TOP 10




10.안드레이 보로닌

보로닌은 서유럽 톱-클럽에서 RPL로 찾아온 두번째 선수다.

첫번째 선수는 아스날 벤치를 달구다가 스파르탁 모스크바로 이적한 크빈시 오부수아베이에이다.

보로닌은 마인츠.레버쿠젠.헤르타에서 활약했고 다만 베니테즈의 팀 로테이션에 들어가는데

실패했으며 현재 RPL에서는 로코모티브전 골과 사투른전 퇴장이 전부다.




로코모티브전 보로닌 골 영상




9.블라디슬라브 바슉

키예프에서 블라디미르 비스트로프 (두번 배신한 남자) 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90년대 디나모 키예프의 모든 영광을 함께하며 이름날렸던 그는 2002년 스파르탁 모스크바로

이적했지만 로만체프 감독 해임과 팀역사상 최악의 시즌 (리그 10위)을 막지는 못했다.

그 후 우크라이나 리그 오데사를 거쳐서 2005년 키예프로 컴백했으며 비스트로프와 같은

어그레시브한 환영행사는 없었다 다행이도...




디나모 키예프 울트라스 against 바슉




8.로만 막시뮤크

아르샤빈이 등장하기전 뻬쩨르부르크의 "판타지스타"였다.

왼쪽 사이드의 지배자였으며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의 무한적인

신뢰를 받았다.

1999년 FA컵 우승을 안겨주는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이후 제니트와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우크라이나 리그와 카자흐스탄 리그를 방황했고

35살의 나이로 체르노모레츠 오데사에 소속되어 있다.




1998 시즌 CSKA VS 제니트





7.알렉산드르 알리예프

현재 로코모티브의 에이스이며 매경기 골을 넣으며 RPL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말로 로코모티브가 우승경쟁을 하고 있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알리예프의 존재다.


 

RPL 데뷔골





6.안드레이 구신

디나모 키예프에서 수많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을 경험했다.

크릴리야 소비에톱에서 하지 하지예프 감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든든한 도우미로 사투른에서도 함께헀으며 하지예프가 안쥐 감독직에

오르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은 코치로 구신을 부른것.




2005/2006 우에파컵 크릴리야 소비에톱 VS 알크마르





5.알렉산드르 고르슈코프


특이하게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대 모두 뛰었으나 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 국대로 활약했다.

33세때 국제대회 데뷔해 스페인전 아주 중요한골을 넣었다.

자기관리 또한 철저해 39세 까지 활약했으며 38세의 나이로 제니트 우승에 일조했다.



환송회






4.세르게이 코르밀체프

토르페도 모스크바에 이고르 셈쇼프만이 훌륭한 선수가 아니란걸 몸소 보여준 선수.

토르페도 모스크바 팬들은 그를 지단에 비교하곤 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좀 더 훈련에만 집중하고 유흥을 포기 하고 살았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되었을텐데

2년전 은퇴했다.




슈퍼골 VS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3.드미트리 파르표노프

2002년 8월 디나모와의 경기에서 얻은 "치명적"부상만 아니었다면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더 오래뛰었을것이다.

스파르탁에서 4번이나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데뷔골




2.막심 칼리니첸코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8년반동안 주전과 서브를 오가며 활약했다.

이고르 티토프의 존재와 우크라이나 국적이 붙박이 주전으로 뛰는것을 방해했다.

세르게이 샤블로가 디렉터로 있던 시절 러시아 국적을 제의 받았지만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을 포기할수 없어 거절했다.

항상 스파르탁과 결별하는 방법은 "아름답지"못하듯 그또한 그렇게 팀을 떠났다.

현재 자국리그 "드네프르"에서 뛰고 있다.




스페셜 영상






1.아나톨리 티모슉

러시아 리그를 빛낸 최고의 선수중 1명.

2007년 2000만 달러의 이적료 신기록을 기록하며 제니트에 왔다.

리그우승.우에파컵.유러피언 슈퍼컵 우승의 1등 공신이다.




hasta la vista 티모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