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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L/N.Team

알란 자고예프




사실 알란 자고예프에 대해서 따로 다룰 생각은 없었다.


자고예프에 대해서 여태 다루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내가 다루지 않더라도


혼다 덕에 CSKA 모스크바가 국내에서 이름을 좀 더 알리다보니 자연적으로 자고예프가 언급되는


경우가 늘었고 또 전설적인 "맨유"와의 일전으로 많은 국내 축구팬들이 그를 접해봤기 때문이다.



요즘 유로 2012에서 가장 핫하다보니 궁금해 하시는분들이 개인적으로 질문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렇게 따로 한번 자고예프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




알란 엘리즈바로비치 자고예프


1990년 6월 17일 베슬란 출생


179 CM 70 KG


2008년 부터 CSKA 모스크바 1군에서 활약


리그와 컵 유럽대항전을 합산한 스탯은


2008 29경기 13골


2009 40경기 10골


2010 36경기 8골


2011/2012 48경기 6골


국가대표 22경기 7골


자고예프는 스탯으로만 봐도 득점력을 갖춘 미드필더다.





루빈 카잔전 후반전 추가시간 동점골



일단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을줄 안다.


즉 새가슴은 아니라는 뜻



자고예프는 충격적인 테러사건이 있었던 베슬란 출신이다.


베슬란 출신 남자들은 뭔가 화끈하고 강심장이다.


일부겠지만 내가 봐왔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렇다.



당시 필자도 모스크바에 거주할때라 그 충격적인 뉴스가 생생하다.


어떻게 학교를 점거해서 어린학생들을 인질로 삼을수 있었는지...


베슬란이 위치한 오세티아 공화국은 가난한 곳이다.


자고예프의 가족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어린시절 노동을 해야했다.







그의 축구인생의 시작은 2000년 블라디카프카스의 Autodor - Unosti 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가죽공"이라는 유망주 토너먼트에서 눈에 띄여 톨랴티에 위치한 유리 코노플레프가 만든 


축구선수 육성학교에 들어가서 기량을 닦는다.


2006-2007년은 드미트로브그라드의 크릴리야 소비에톱 SOK 에서 뛰며 37경기 6골을 넣었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렸던 크릴리야 소비에톱 SOK 시절


CSKA 모스크바의 예브게니 기너 구단주는 스파르탁 탐보프에서 헐값으로 데려온 지르코프를


첼시에 거액에 보낸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조만간 자고예프가 그 자리를 대체할것으로 본다.






2007년 CSKA 모스크바로 이적하며 2008시즌부터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2008시즌 10라운드 FK 힘키와의 홈경기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데뷔후 최고의 경기를 펼친다.




스파르탁 모스크바와의 클래식 더비에서 어시스트 3개를 기록





데뷔시즌 스페셜 영상







CSKA 모스크바가 간만에 제대로 된 10번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CSKA에는 제대로된 10번이 없었죠.


지르코프가 입단시즌에 10번을 권유 받았지만 겸손한 지르코프는 처음 팀에 온 선수가


10번같은 번호를 달면 건방저 보인다며 18번을 달았었고


페레이라라는 아르헨티나인이 10번을 달았었지만 삽질만 하다가 PSV로 보내버린 기억이 납니다.




2009시즌 지코가 감독으로 오면서 출전시간이 줄어듬과 동시에 여러가지 루머가 생겼습니다.


첼시.리버풀.토튼햄과 연결되었다는 루머들과 관련해서


자고예프는 인터뷰에서 아직 CSKA 모스크바를 떠날시기가 아니며


자신은 좀 더 CSKA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첼시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합니다.




그 유명한 2009/2010 챔피언스리그 맨유원정





자고예프와 바그너 러브 조합은 이전의 카르발류 바그너 러브 조합보다 화끈했습니다.


두선수의 호흡 환상적이 었어요.


여기서 재미난 사실은 다니엘 카르발류와 자고예프의 관계입니다.


두 선수는 서로 엮일일이 없었습니다만


2005년 여름 UEFA컵 우승이후 부상과 컨디션 회복 실패로 내리막을 걷던 다니엘 카르발류가


각성하며 CSKA 모스크바에 복귀하며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그 틈사이에 자고예프란 천재가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즉 가자예프 감독은 자고예프를 선택했고 카르발류의 자리는 없었죠.


결과론적으로 이 선택은 신의 한수였네요.


다니엘 카르발류는 CSKA의 선수 이적정책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한 선수입니다.


2005시즌 이후 유럽의 다수의 빅클럽들이 카르발류 영입을 원했고 엄청난 이적료들이 거론되었습니다.


당시 CSKA의 예브게니 기너 구단주는 우리는 선수를 파는 팀이 아니라 더 강하게 키워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공을 원한다며 카르발류를 묶어두었습니다만 내리막을 걸으면서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너 구단주는 CSKA에서 유럽의 빅클럽 레벨로 성장한 선수들을 더이상 묶어두지 않고


현실적인 오퍼가 왔을때 모두 보내주었습니다.


즉 자고예프 또한 본인과 구단 모두가 준비가 되면


야로식.올리치.크라시치.조.지르코프처럼 더 큰 무대로 날아갈것입니다.




2010 시즌 자고예프는 스타팅 멤버로 경기에 나서는 횟수가 조금 줄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혼다 영입으로 인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어쩐다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리그에서만 24경기 나와서 6골 6어시스트의 준수한 성적을 내고 


유로파리그에서도 8경기 2골 4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슬루츠키 감독은 이런 소문들이 들릴때마다 CSKA 모스크바는 자고예프 중심으로 팀이 이루어저 있고


그가 팀의 중심이라고 거듭 밝혀왔습니다.





알란 자고예프 VS 루빈 카잔





2011년 5월 26일 자고예프는 유스팀으로 강등당합니다.


술루츠키 감독과의 불화 사건입니다.


팀 규율에 문제가 되는 행동이 강등의 이유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자고예프는 술루츠키 감독을 비난하며 사태가 겉잡을수 없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술루츠키 감독은 자고예프를 이적시키려고 했고 로코모티브 모스크바가


700만유로로 자고예프 영입 목전까지 갔지만


자고예프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팀에 잔류하게 됩니다.







2008시즌 데뷔이후 그렇게 큰 기복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물론 부상도 있었고 작은 사건들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건 없었다.


영혼의 짝이었던 바그너 러브 대신 리그 최고의 득점력을 갖춘 드록국 출신의 둠비아가 있다.


2008년 독일과의 월드컵 예선전으로 국가대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대표팀 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표팀의 현재이자 미래다.


대표팀의 10번 또한 2014년 월드컵 예선에는 아르샤빈이 달고 있을지라도 본선이나 본선이후에는


자고예프가 주인일것이다.


몇몇 분들은 자고예프의 이번 유로 활약상을 보면서 램파드를 떠올리신다.


자고예프는 램파드 보다 다른점은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플레이나 허를 찌르는 공간 돌파같은 부분에서는


더 우월하다고 본다.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드미트리 로스코프에 기동력과 10번만이 기대할수있는


어떤것을 더해놓은 느낌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러시아리그의 강자 CSKA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지만 아직 리그 우승이 없다.


이번 유로에서의 활약으로 수많은 이적설이 돌고 있지만


팀의 리그 우승부터가 먼저일듯 싶다.


최고의 리그로 향했던 선배들을 보면 러시아리그에서의 우승 아니면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미친 시즌후에


떠나갔기 때문이다.





발레리 가자예프 "자고예프는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없다.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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