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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L/Etc

예고르 티토프

제가 아직 이 선수에 대해서 인터뷰 말고 따로 다루지 않았던것이


이상할 따름입니다...


베스샤스니흐나 마랏 이즈마일로프 같은 잊혀저가는 선수들을 다뤘을때


몇몇분들이 티토프에 대해서 궁금해 하셔서 저도 옛추억을 떠올릴겸


제가 지지하고 있는 팀의 심장과도 같았던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래요 일단 저는 꼴쥐라고 불리우는 엘쥐 트윈스 팬입니다.


예전에 미스터 엘쥐 하면은 "검객" 노찬엽 선수를 애기했었지요.


팀의 아이콘이라는겁니다.


스파르탁 모스크바 하면 90년대에는 안드레이 티흐노프를 애기할것이고


90년대 후반 2000년대를 논한다면 예고르 티토프를 애기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 스파르탁 모스크바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누구냐 한다면


예고르 티토프 겠지요.




스파르탁 모스크바의 No.9 예고르 티토프


일단 간단한 호구조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976년 5월 29일 모스크바 출생


188 CM 80 KG


길고 마른 체격때문에 말라깽이 혹은 성냥개비 "Sukharik"(말린 과자) 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의 왕자 토티가 그러했듯이


1992년 만 16세의 나이에 스파르탁 모스크바 유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합니다.


1995년부터 1군 무대에 올라옵니다.


간단히 스탯을 정리해보면


일단 1995-2008 시즌까지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뛰었습니다.


1995 15경기 1골


1996 39경기 5골


1997 43경기 10골


1998 45경기 10골


1999 40경기 12골


2000 37경기 18골


2001 42경기 11골


2002 21경기 4골


2003 39경기 10골


2004 도핑으로 인해서 2004시즌 통째로 쉬었습니다.


2005 29경기 4골


2006 42경기 9골


2008 11경기 0골


스탯을 보시면 어...? 하실수 있겠지만 티토프 포지션은 미드필더입니다.


미드필더로써 득점력도 갖춘 선수였습니다.




예고르 티토프 스페셜 영상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뛰는동안 1996-2001 시즌 6연속 리그 우승을 했습니다.


1997/1998,2002/2003 러시아 컵도 두번 들어올렸구요.


2004년 도핑으로 1년간 선수자격을 박탈당하고 2005년 돌아오자마자


2005.2006.2007 팀들 2위로 이끕니다.


일단 스파르탁 모스크바는 2002 시즌 이후로 암흑기를 걷게 됩니다...


티토프 같은 경우에 스파르탁의 황금기와 암흑기 그리고 3시즌 연속 2위를 하며


살아나는 모든 시기를 함께 했습니다.






1999시즌 골든골 !!!






티토프의 진가는 러시아 국내 무대보다도 유럽대항전에서 많이 발휘 되었습니다.








커리어 최고의 경기로 꼽히는 2000/2001 챔피언스리그 스포르팅 리스본 원정


스포르트 익스프레스 평점 9점인가..10점 만점을 받았던 경기입니다.


스포르팅의 골문은 그 누구도 아닌 피터 슈마이헬이 지켰지만... 초!토!화!...




스파르탁 팬포럼에 올라온 유럽대항전 명경기 모음입니다.


대다수의 경기를 티토프화 함께 했지요.





레알마드리드 전 아스날 전 레버쿠젠 전 등등 큰경기에서의 골로


그 가치를 더 해갔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 한가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유럽에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던 시절입니다.


2000년 바이에른 뮌헨의 베켄바우어 회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티토프 영입을 제안합니다.


베켄바우어에 말에 의하면 티토프는 당시 뮌헨의 시스템에 딱 들어맞는 선수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에이전트인 아브라모프를 통해서 티토프 영입협상을 시도했는데 올렉 로만체프 감독과


에사우렌코 부회장이 이적료로 2000만 달러를 부릅니다...


이에 베켄바우어는 그돈이면 좋은 선수 3명을 살수있다고...최종적으로


1000만 달러의 이적료를 제시합니다.


티토프 본인에게는 10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했구요


당시 티토프가 스파르탁에서 받던 연봉의 3배 가량이었습니다.


"루코일"의 후원을 받는 스파르탁 모스크바는 당시에도 그렇게 돈이 궁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티토프를 보내지 않기 위해 터무니 없이 나간것이 었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티토프가 있어야할 자리에 발락이 레버쿠젠으로 부터 영입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느끼는거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네요...약물파동으로 2004년 통째로 쉬고


말년에 스파르탁에서 "스파르탁만의 엄청난 레전드 대우"를 받고 팽당한것을 보면 말입니다.








2004년을 통째로 날려버리게된 도핑에서 걸린 웨일즈와의 유로 2004 플레이오프


커리어의 정점으로 가던 2004년을 통째로 날려먹은건 선수 본인에게나


소속팀 스파르탁 모스크바 그리고 러시아 국가대표팀에 엄청난 손해였습니다.






2004년 축구로 부터 쉬는동안 절친인 뮤지션 니콜라이 트루바치와 함께...


횽 다신 노래 하지 마요 ㅠㅠ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2006 시즌 러시아 더비 제니트 원정 !!!




2007시즌 제니트와 러시아 더비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골





2008시즌중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서 절친한 동료인 세르게이 유란이 감독으로 있는 FK 힘키로 


전격 이적합니다.


이적료 한푼 없이 말입니다.


스파르탁의 진정한 레전드라면 FK 힘키에서 뛰어야 합니다.


암 그렇구 말구요...





리그 12경기에 출장해서 1골을 기록합니다.





2009 시즌 선수생활 말년에 절친 안드레이 티흐노프와 뛰고 싶다며


저 멀리 카자흐스탄의 로코모티브 아스타나로 이적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쉽습니다...티토프 나이 만 33세로 조금 더 높은 레벨에서 뛸수 있었을텐데


아니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9번 영구결번은 아니더라도 성대한 은퇴식과 함께


선수생활을 마무리 지었어야할 횽님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절친과 함께 행복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이제 국가대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러시아 대표팀 역사에 남을 경기인 유로 2000 프랑스 원정경기로 화려한 대표팀 데뷔를 했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골키퍼 필리모노프의 우크라이전 삽질로 인해서 본선진출이 좌절되었지요 ㅠㅠ




문제의 우크라이나전


아쉽지만 메이저대회 데뷔를 2년 뒤로 미룹니다.




로만체프 사단의 중심으로 2002 월드컵 예선을 시작합니다.




티토프도 한골을 기록하고 4대0 대승을 거둔 스위스 전




유고슬라비아와의 일전





조1위로 당당히 월드컵 본선무대에 오릅니다.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골이 티토프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대회 골일지는


이때는 몰랐습니다 ㅠㅠ






굴욕의 일본전 ㅠㅠ




벨기에전 패함으로써 16강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골든제네레이션 멤버에다가 리그 정상급 선수들의 조합으로


못해도 8강이라며 대회를 시작했던 대표팀의 초라한 마지막이었네요.


수확이라면 시체프의 발견 ? ㅠㅠ


아무튼 모스토보이 사건도 그렇고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끝난 메이저 대회 였습니다.




2007년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더이상 티토프를 볼수 없었습니다.


총 A매치 41경기 7골을 기록했습니다.




현재 이야기를 않할수 없겠지요.


2009 시즌 은퇴후 올시즌부터 오랜동료 드미트리 알레니체프가 감독으로 있는 4부리그 팀


아스날 툴라에서 뛰고 있습니다.


아스날 툴라에는 은퇴한 스파르탁 모스크바 동료들이 소속되어 있는데요


필리모노프.파르표노프.예베세예프.흘레스토프.코브툰 등등 화려합니다.










조만간 스파르탁 모스크바 벤치에서 뵙겠습니다.